1년 차 마케터의 회고: 설득, 기준, 평가

00을 싫어하던 1년 차 마케터가 협업, 스토리텔링, 기대치 조율을 통해 배운 성장의 기록. 업무 능력보다 중요한 ‘설득'과 '평가' 그리고 '기준'세우며 살기
1년 차 마케터의 회고: 설득, 기준, 평가

이번 글은 1년차 마케터로서 회고록입니다. 설득과 기준을 키워드로 얘기할 겁니다.

사실 사용성이나 지식은 어느 정도 학습했고, 투입 시간 대비 늘어나는 효용의 한계를 느끼는데 오히려 정말 중요한 건 소프트스킬이지 않나 싶은 요즘입니다. 시작합니다.

설득을 싫어했다

설득을 시간낭비라고 생각했다. 아마 이건 가정환경이나 개인 성격에 기인할 거다. 나아가는데 쓸 에너지도 부족한데, 남들이 뭐라고 하는 걸 설득하는 건 시간낭비 같았다.

하지만 아니었다. 협업이 아니라 혼자 일하는 거라면, 혼자 사는 거라면 그럴 수 있겠지만, 생각보다 설득과 협업은 중요했다.

최근에 이 설득과 기준, 협업에 대해서 느낀 게 컸는데 3가지 에피소드가 있다.

생각보다 정치는 중요해

정말 국내 최고 스타트업의 PO라는 분의 강의를 들었다. 그런 곳이면 정말 미친듯이 치고 나가고 그럴 거 같았는데, 생각보다 정치가 중요하다 그랬다.

물론 조금 더 풀어말하면, 설득이 중요하다는 뜻이었다. 예를 들어 어떤 회사든 성공만 할 수는 없다. 하지만 실패도 마냥 꼴아박는 실패만 있는 건 아니다. 예를 들어 a,b,c의 방향이 있는데 a로 해서 안 됐다고 치자. 그런데 누구는 ‘a해서 실패했다’, 누구는 ‘b,c로 가면 성공할 수도 있으니 일단 b를 하고 그 다음 c를 해보겠다. 성공확률은 50%다’ 이렇게 말한다.

생각보다 설득은 중요하다.

수치? 그게 뭐가 중요해

기획서 강의를 들었다. 강사분이 실제 회사에서 사용하던 기획서를 보여주며 이런 과정으로 기획했고 설득했다는 내용이었다.

사실 이런 마케팅, 브랜딩은 사례만 보면 진가를 느끼기 어렵다. 원래 일이든 컨텐츠든 상품이든 너무 튀면 튄다고 별로고, 너무 진부하면 진부하다고 또 별로기 때문이다. 그래서 맥락을 모르고 겉으로 볼 때는 비슷한 거 했구나 느끼기 쉽다.

그래도 그 맥락을 들으니 재밌었고, 개인적으로는 저 스토리를 구성하는 근거들을 어떻게 가져왔나 궁금했다. 그런데 강사님이 말했다.

“수치? 그게 뭐가 중요해. 도입부에 문제를 강조하고, 그 다음 전략이 들어가고, 해결방안에는 말 되는 대안들로만 딱딱 넣으면 된다고”

생각해보면 그 분 말도 맞았다. cmo급인데 설마 수치 하나하나를 스스로 찾거나, 직접 넣을 생각은 안 했을 거다. 큰 방향만 정하면 되는 위치니까. 이 방향으로 하려고 하는데 밑에 애들한테 될만한 근거를 찾아달라 하면 됐으니까.

그분한테 배워야 할 건 잔스킬이 아니라, 설득까지 시키는 스토리텔링이었다.

당신한테 필요한 게 그 스킬이에요

위에 기획서 강의는 회사 돈으로 들은 거였는데, 실무적으로는 얻은 게 없었다. 그래서 보고도 미루고 미뤘다. 기껏 회사 돈으로 무언가를 들었는데 남는 게 없어서 죄송한 마음뿐이었다.

대표님이 하도 재촉해서 보고를 했는데, 신기하게 대표님이 정말 좋아했다.

“당신에게 부족한 게 그런 스킬이다. 실무 지식은 알아서 쌓겠지만, 큰 회사 다니면서 얻어야 하는 그런 설득과 보고의 스킬이 부족했다. 작지만 여기서라도 그 연습을 해봐”

이런 에피소드들을 엮으며 느낀 건, 정말 세상 만사가 기대치의 조율이 전부라는 거다.

일단 협업에서 설득이 중요한 이유 첫 번째는, 내가 다 하는 것보다 잘하는 사람 몇 명한테 분배하는 게 훨씬 효과적이어서고(내가 캡컷으로 세네시간 하는 것보다, 회사 PD님이 40분만에 한 릴스가 훨씬 고퀄리티고 괜찮다)

두 번째는, 설득하지 않으면 그 행동과 말들이 얼마나 가치있는지 모르기 때문이다. 오마카세도 그냥 내놓으면 맛을 모르지만, 어디 충주에서 가져온 사과를 이용했고, 제주에서 가져온 김상득씨의 인삼을 사용했다면 더 맛이 느껴진다.

일도 결과물보다 그 결과물믈 얻기 위해서 어떤 노력과 헌신이 있었는지를 어필하는 게 더 효과적일 때가 있다. 뒤에 말하겠지만, 어차피 상대방은 결과물의 값어치를 모르기 때문이다. 나는 늘 말로 설득하기 귀찮으니 행동으로 보여줘야겠다고 생각했지만, 올해부터는 그게 얼마나 힘든 거고, 얼마나 고생인 건지 한번쯤은 말로 설명해야겠다고 생각을 바꿨다.

트레이더 같은 완전 혼자인 직업이 아닌 이상, 설득과 기대 조율은 죽을 때까지 해야 하는 일 같다. 인간은 죽을 때까지 해야 하는 일이 은근 많다.

마케터는 실력이 중요한가?

CMO급 강의도 꽤 들었고, 강연만 올해 한 2~30개는 가거나 들었던 거 같다. 개인적으로 트레바리인지 바리바리 바리데기인지도 꽤 다녔다. 그러면서 느낀 건 위랑도 이어지지만, 정말 실력적으로 뛰어난 마케터라는 건 무엇인가에 대해 느낀 회의감이다.

지금 내가 쌓은 지식과 경험, 협업스킬들은 밖에서도 통하는가?

애플에서 20년 있다 온 분이 우리 회사에서 우리 자원과 인력으로 하면 애플급 느낌을 낼 수 있는가?

내가 애플에 가면 그 자원과 인력으로 애플급 느낌을 낼 수 있나?

다 아닐 거 같다.

게다가 마케팅으로 밥 먹고 산다고 하는 사람들도 주로 집중하는 산업이나, 주로 집중하는 플랫폼이나, 주로 집중하는 직무가 다 다르다.

딴 얘기지만, 가끔 협업을 하다 보면 내부에서 이런 얘기를 한다.

“저 사람은 우리 업계에 대해 잘 몰라”

그럼 나는 생각한다.

‘나는 다른 업계에 대해 아나?’

현재의 지식과 스킬로 그리고 배운다는 마인드로 딴 곳에 어느 정도 적용할 수 있겠다고, 나도, 외부 마케터나 디자이너도 그렇게 생각한다.

생각해보면 중요한 건 진짜 지식이나 스킬이 아니라, ‘저 사람은 이걸 해내줄 수 있겠구나’하고 설득하는 스킬일지도 모른다.

고객은 원가를 모른다

이건 세일즈에 대해 공부하면서 느낀건데, 설득의 연장선이다.

원가 공개라는 건 강력하면서도 의미 없을 때가 많다. 내가 지금 쓰고 있는 인블로그의 원가는 얼마인가? 아이폰의 원가는? 버킨백의 원가는? 레모나의 원가는? 코카콜라의 원가는? gpt로 찾아보면 다들 놀랄 거다. 특히 레모나의 원가를 듣고서는 깜짝 놀랐다.

내 마케팅의 원가는 얼마인가?

내가 조빠지게 대행해서 10을 20으로 만들어줬지만, 사실 클라이언트가 원하는 건 10에서 12.5로 미세하게 가는 거였다면, 낭비된 원가는 얼마인가?

클라이언트의 작업물을 10에서 12.5로 가는데 에너지10이 들고, 10에서 20으로 가는데 30이 들었다면, 낭비된 에너지는 어마무시하다. 클라이언트는 20 따위 바라지 않았을 수도 있다.

최근 유튜브에서 음식 원가 공개 컨텐츠를 하는 게 종종 보인다. 재밌지만 재밌을 뿐이다. 우리가 음식점을 가고 포장하는 이유는 장보는 에너지, 요리하는 에너지, 설거지할 에너지, 음쓰 버릴 에너지를 아끼고 식당 분위기 등을 느끼는 데 있다. 인지를 못해서 그렇지 원가로 재료만 사면 마법처럼 요리가 탄생하는 게 아니라는 걸 누구나 알지 않은가.

막말로 우리가 수첩의 원가를 아는가? 그냥 수첩은 2천원으로 형성되어있기에 그쯤에 살 뿐이다. 의자는 20만원쯤 형성되어있기에 그쯤에 살 뿐이다.

실물 제품이라면 가치를 더 낼 수 없다고? 키엔스는 실물을 기반으로 파는데도 이익률이 거의 50%다. 나는 이들의 가치 기반 세일즈에 감명받아서 키엔스 코리아에 3번이나 지원했다(JLPT도 있으니 키엔스 재팬도 괜찮았을지도..)

강의팔이 아니냐?

설득과 기준의 다른 이야기다.

최근 친구들을 여럿 만났는데, 다니는 회사를 설명하기가 어렵다. 인플루언서가 한다 하면 늘 하는 말이 비슷하다.

“아 그냥 강의팔이구나” “너는 거기서 뭐해?”

뭘하긴 뭘 하는가. 뭐든 팔려고 릴스도 찍고 글도 쓰고 다 한다. 하지만 주변에 사기업 다니는 문과들이 없어서 그런가 설명이 어렵다. 내부에서는 욕 안 먹게 회의도 많이 하고, 오래 가게 브랜딩도 하고, 방침도 세우면서 최선을 다하고 있는데 겉보기에는 다 비슷한가 보다.

친구들을 만나면 주식 얘기, 부동산 얘기밖에 안 한다. 꿈을 가진 친구들도 거의 없다. 버킷리스트 같은 이야기도 안 한다. 돈을 벌기 위해 돈을 번다.

돈으로 뭘 하고 싶은지, 돈이 어느 정도 있으면 좋겠는지, 최저점은 어느 정도인지 생각하면 훨씬 인생이 재밌을 거 같은데, 다들 일은 재미없다 하고, 돈 얘기밖에 안 한다.

물론 돈 중요하고, 돈 나도 ㅈㄴ 좋아한다. 코인 주식 부동산 스스 안 해본 게 없다. 대충 한 것도 아니다. 코인은 하드월렛으로 관리했고 에어드랍하고, 직접 해외 리서치까지 하면서 했다. 부동산도 스터디 안 한 건 아니지만 워낙 고수가 많아서 말은 줄이겠다…

하지만 요즘은 그렇게 열심히 안 본다. 돈이 안 중요해서가 아니다. 본업이 재밌고 잘 되고 있으니 이렇게 블로그 쓰면서 시간 보내고, 흘러가는 시간을 조금이라도 더 재밌게 보내는 거뿐이다.

설명하는 것도 귀찮고, 재밌게 살자고 설득하는 것도 귀찮다. 주변에 맞출 필요도 있다고 생각했는데, 인생을 즐기거나 경험하는데 있어서는 남의 평가나 시선 따위는 덜 중요한 거 같다.

무의미의 축제

최근 중국 여행을 갔다. 큰 이유는 없었다. 그냥 진짜 안 해봐서 해본거였다. 차라리 일본이라면 교환학생 시절 친구들도 있고, 말도 통하니 편했을 거다.

@patagwania

최근 대화하다, 뭐 해보고 싶은 거 없냐는 질문을 받았는데 할 말이 없었다. 물론 개인의 소소한 목표들은 있었지만 뭔가 일이나 인생에서 거창하게 떠오르는 건 없었다.

이유가 뭘까 생각해보니, 너무 무언가에 맞추다보니 그런 거 같았다.

회사원이라면, 남자친구라면, 아들이라면, 남편이라면 이래야지.

내가 하고 싶은 것보다, 무언가에 설득당하고 기준에 맞추려다 보니 내 기호가 사라진 거 같았다.

패션을 좋아했던 거 같은데, 효율에 집중하고 인블로그 월세에 지출하다 보니 옷도 유니클로와 무탠다드밖에 안 산다. 100만원 넘는 코트가 3개나 있는데 유니클로 아우터만 입고 댕긴다. 그게 편해서다. 그런데 패션을 왜 좋아했지? 돌이켜보니 내가 정말 옷을 좋아해서였나? 아닌 거 같다.

물론 최소한의 대화와 사회생활을 위해서 사회적 컨텐츠들을 보고 물품을 소비하겠지만, 그냥 내 기준에 맞춰 살 거 같다. 그리고 내가 만나는 사람들도 그랬으면 좋겠다. 서로 다른 기준들이 만나서 대화하고 섞이는 게 진짜 재밌으니까.

아무튼. 그래서 중국 여행은 효율과 루틴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하나의 시도였다. 중간에 지갑도 잃어버렸고, 음식도 입에 안 맞았고, 말도 하나도 안 통했지만 괜찮았다.

무질서하지만 제일 통제가 심하고, 통제가 심한 것에 대해서는 또 질서 있게 따르는 이상한 나라에서 나를 좀 무질서하게 만들고 싶었다. 꽤 재밌었다.

무의미하고 무용한 선택의 연속에서, 무언가 얻은 거 같았다.

직장 동료가 만다라트를 한다는 말에, 나도 내년에 크게 하고 싶은 것 9가지 정도를 생각했다. 거의 다 채워간다.

다른 회사도 이럴까

현재 회사에서 1년이 됐다. 1년 동안 정말 정말 많은 일이 생겼다. 정말 공공기관 1년 반치 일이, 여기서는 3개월만에 일어났다. 웬만한 스타트업보다도 스펙타클했다.

가끔은 궁금하다. 다른 이들도 이런 변화와 재미를 느끼는가? 내가 다른 회사에서도 이런 느낌을 받을 수 있었을까?

물론 회사가 변하는 재미도 있지만, 바뀌는 과정에서의 혼란도 있었다. 예를 들어 중간자 같은 역할을 겸하는 거 같다고 느껴졌다.

옛날에는 대표랑 DM으로 이거 했어요, 저거 했어요. 잘했어요, 못했어요. 이 정도 소통이었다면. 이제는 내가 대표 외에 제일 실무를 오래 한 사람이 됐다. 그러니 뭔가 내가 더 하기보다는, ‘저번에 그런 상황에서는 이렇게 했어요’ ‘그 자료는 여기 있어요’ ‘아마 대표님은 요런 방향을 더 좋아하실 거 같아요’ 같은 말을 하는 날이 꽤 많아졌다.

내가 아무리 열심히 메타 광고를 on,off하고 검색광고 입찰을 타이트하게 가져가도 큰 효용이 아니었다. 차라리 내 경험과 말 한 두마디로 상대방의 한두시간을 아껴주는 게 효용이 크다.

이제는 상대방의 에너지를 줄여주는데 내 의도를 전달하는 설득이 중요해진 거다.

뾰족해져서 불행한 사회인

포지셔닝이라는 유명한 말이 있다. 직장인이라면, 사회생활로 돈을 버는 사람이라면 뾰족해져야 한다. 끊임없이 비교하고 분석해서 나를 남들과는 다른 위치에 놓아야 한다.

야생의 마케터들도 남들과 달라질라고 마케팅 헌터, 마케팅 고인물, 마케팅 스나이퍼, 마케팅 잠수함, 마케팅 암살자, 마케팅 차르봄바 등 온갖 워딩을 가져간다

하지만 가끔은 이게 현대인의 딜레마라고 본다.

정말 승부욕이 강한 사람이 아닌 이상, 스스로를 계속 경쟁과 비교에 두는 건 스트레스다. 가끔은 물 흐르는대로 살고 싶은 게 사람이다. 그래서일까, 빌게이츠 같은 사람들도 고집 없이 편안하게 살라고 말한다. 그렇지만 사실 성공한 이들의 99.9%는 평범하게 안 살았다. 노력하고 피 토하고 누군가를 짓밟으면서 성공했다. 그렇게 성공해서는 편안하고 안정적으로 살라 말하는 게 기만 같긴 하지만, 그 위치에서는 이제 편안하게 살아야지 죽을 때까지 경쟁하며 살 수는 없으니까, 맞는 말 같기도 하다.

뾰족해지려 노력하면서 불행한 이들을 더 가까이에 두고 싶고 난 그들을 사랑한다. 노력하고 불행해지면서 얻은 이야기들을 사랑한다. 기준과 기호 없이 다 좋다고 말하진 않겠다. 그래도 예의상 가까운 이들에게는 무한한 응원과 애정을 보낸다. 두 삶 다 장단점이 있기 때문이다.

하는 일이 정체성이 되어버린

최근 스탠드업 코미디에서 재밌는 장면을 봤다. 요즘 애들은 운동을 가르쳐주는 유튜버한테, 공부도 배우고, 투자도 배운다는 거였다.

또 다른 유튜브에서는, 교수들이 정치에 대해서 말하는 게 자신의 학문적 전문성을 정치적 전문성으로 오해해서 발생하는 거라고 말하는 걸 들었다.

하는 일이 정체성이 되어버린 사람이 있다. 나도 그렇다. 모든 걸 직무적인 관점으로 보니까, 저거는 저런 의도네, 저거 효과 좋네, 저거 나도 만들어볼까 싶다. 즐기기가 어렵다. 무의미하게 즐기는 게 사라졌다. 앞선 중국 이야기랑도 비슷한 결이다.

최근에 레제편을 직장 동료랑 봤다.

두 번째 보는 건데도 재밌었다. 그런데 동료는 영상의 효과랑, 스토리텔링이 보인다 그랬다. 생각해보니까 분석할 여지가 있었다. 그는 의도적으로 그런 생각을 빼고 보려고 노력했다고 한다. 그도 직업이 자신의 취향과 정체성에 개입하는 걸까?

부모님도 그랬다. 그들은 정의의 편에 서는 일을 했다. 그리고 시민으로서도 정의롭게 사신 편이다. 자식들에게도 정의를 강조했다. 그렇지만 의문이 든다. 내가 왜?

부정만 아니면 됐지, 모든 일에 굽신대며 손해보며 살 필요가 있는가? 정의와 부정 사이 분명 나에겐 적당히 이익이 되고 남에겐 그리 큰 손해를 안 끼치는 삶이 가능하지 않나?정의를 강요받다 정의를 의심하게 된 내가 마치, 통제를 강조하다 엉망이 되어버린 중국 길거리 같다.

물론 일은 중요하고, 인생에서 큰 비중을 차지한다. 그렇지만 내가 하는 일만으로 나를 정의 내리긴 싫다.

수치랑 성과와 아이디어를 중시하면서도, 가끔은 감성적인 마케터 회고록을 반년에 한번은 쓸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고시원 살면서 본 사람들, 겪은 경험들, 느낀 점들을 어떠한 수치나 맥락 없이 그냥 써내려가면서도 조회수 100만씩 얻는 사람도 되고 싶다.

내 책 아님

함부로 평가하지 않기 위해

가끔 왜 이렇게 잡다하게, 쓸데없이 보고 아냐고 묻는 사람들이 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함부로 판단하지 않기 위해서다. 나는 다르게 하려고 노력하지만, 누군가에게는 그냥 강의팔이로 보이는 것처럼 나 또한 누군가를 그렇게 볼 수 있다.

사실 섣부른 판단은 인간에게 아주 효율적인 체계다. 그렇지 않으면 인간의 뇌는 판단을 미루고 정확도를 높이느라 터져버릴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작은 신호와 맥락만으로 상대방을 판단하고 거른다. 워홀 간 여자는 거른다, 문신한 여자는 거른다, 생산직 남자는 거른다. 더치페이하는 남자는 거른다. 뭐 이딴 뻔하고 지루한 얘기들. 자신이 보는 세계가 정체성이 되어버려서 남들을 똑바로 보지 못하는 인간들. 미디어가 생산하는 이야기를 보고 떠드는 인간들. 스스로의 생각이 뭔지도 모르는 인간들.

설득은 중요하지만, 상대를 잘못 파악하고 하기는 싫다. 대화를 좋아하진 않지만, 상대방에게 실례가 되는 대화는 하고 싶지 않다. 나는 나만의 기준과 기호가 있지만 그게 상대방에게 상처가 되는 선이어서는 안 된다.

그래서 뭔가 잡다한 이야기를 듣고, 잡다한 이야기를 꺼낸다. 물론 학습 자체가 재밌어서도 있지만.


1년 일하며 얻은 건 결국 데이터나 스킬보다, 사람을 이해하고 설득하는 능력이 더 중요하다는 거였다. 29살을 마무리하며 얻은 건, 남이 만든 기준보다 내가 선택한 기준이 중요하다는 사실이었다.

설득을 싫어했지만, 사실 설득이 서로에게 좋은 거였고 기준을 중시했지만 ,어느새 남의 기준만 중시하고 있어 스스로의 기준이 없다고 느끼기도 했다.

뾰족해져야 사회인으로서 살아남지만, 개인으로선 불행한 것처럼 권태와 나태가 반복하는 것처럼 나는 내 기준을 지키면서 남의 기준을 흔들어 설득해야 했다. 남이 나를 흔들어 설득당할 때에도 내 기준과 기호를 잃어선 안 됐다.

6개월 회고록에선 이 일에 의문이 든다고 적었다. (2편도 있음)

이 일은 마음에 든다. 회사도 마음에 든다. 이제 고민은 내가 어떤 사람으로 남고, 주변에 어떤 사람들을 두어 오래오래 이 일을 하며 내 인생을 즐길 것인가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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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년차 사회인 파타과니아